푸투라서울 소장품
우고 론디노네 (스위스, b. 1964)
sunrise. east. january
Cast bronze with silver auto paint and concrete plinth
190 x 120 x 110 cm
AP 1, Edition of 1 + 2 APs
2005
우고 론디노네의 sunrise. east. 시리즈는 시간의 순환이라는 핵심적이고도 단순한 개념을 탐구한다. 이 2미터 높이의 거대한 은색 알루미늄 두상 조각은 의식용 가면, 유령, 만화, 이모티콘 등 다양한 시각 언어를 연상시키며, 다채로운 표정을 통해 기쁨과 역경 등 인간 내면 감정을 은유한다. sunrise. east. january부터 sunrise. east. december까지 명명되어 한 해의 열두 달 각각을 대표하는 조각들은 관객이 작품을 통해 한 해 동안의 다양한 감정을 되새길 수 있게 한다.
가면은 론디노네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모티프이며, sunrise. east. 시리즈는 원시 문화의 토템을 연상시키고, 열 두 점이 모두 모였을 때는 원형 유적 스톤헨지를 떠올리게 한다. 신화와 일상적인 순간을 연결하는 그의 독특한 접근 방식은 이 시리즈에서도 빛을 발하며, 그는 점토와 캐스팅 같은 고전적인 재료와 기법을 활용하여 과거의 문화사와 미술사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하는 독특하고 명상적인 시각 언어를 제시한다. 론디노네는 나아가 인위적임과 자연스러움, 문화와 사회, 영원과 무상함 사이의 대화를 창출하여 삶과 예술을 탐구한다.
필립 파레노 (알제리 출생 - 프랑스 파리 거주, b. 1964)
Marquee Studio 01
Opalescent Plexiglass, 106 lightbulbs, 9 neons, satin trellis, satin brain box
100.1 x 130 x 70.1 cm
2022
필립 파레노의 차양(Marquees) 시리즈는 극장 입구의 화려한 불빛 차양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할리우드 영화 산업이 황금기를 맞이했던 20세기 초중반 미국에서 특히 유행했던 차양은 상영 작품의 제목과 출연 배우의 이름을 알리는 광고판 역할을 했다. 그러나 파레노의 차양은 모든 문구가 삭제된 채 껍데기만 남아 있으며, 점멸하는 눈부신 할로겐 조명은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파레노에게 차양은 전시 공간에 개입하여 사건(event)의 가능성을 도입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 작품은 영화 상영을 광고하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영화의 존재를 암시하며, 전시 공간을 할리우드나 브로드웨이 풍경의 유적처럼 변모시킨다. 지표, 라벨 또는 명명 장치로 변화한 이 작품은 전시 맥락과 관객의 상상력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획득하며, 불빛 너머의 공간과 시간을 사유하도록 유도한다.
백남준 (한국, 1932 - 2006)
Flicker
Mixed media
185 (H) x 109 x 46 cm
Executed in 1996
백남준의 Flicker는 1960년대에 시작된 그의 실험적 미디어 아트 작품 중 하나로, 빛과 전자기기, 신체적 감각을 결합하여 새로운 시청각 경험을 창출하는 작업이다. 이 작품은 플리커 효과라고 불리는, 빛의 주기적인 깜박임을 이용해 관람객의 시각과 인식을 자극한다.
백남준이 기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탐구하며 만들어진 대표적인 작품으로, 당시 아날로그 텔레비전과 조명 장치를 활용하여 빛의 깜박임을 통해 관람객이 시각적 착시나 심리적 반응을 느끼도록 유도했다. 플리커 효과는 일정 주파수의 빛의 깜박임을 통해 뇌파와 상호작용하게 만들어, 관람자가 새로운 감각적 체험을 하도록 설계된 것이다. 이 작품은 미디어 기술을 예술적 도구로서 활용하고, 기술적 장치가 단순히 정보 전달을 넘어 감각과 의식을 자극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시도이다.
아니카 이 (한국, b. 1971)
Wheel 1-3
UV print on silk screen mesh in cherry frame
148.6 x 118.1 cm
152.7 x 122.6 x 7.6 cm (프레임 사이즈)
2022
아니카 이는 머신 러닝을 활용해 여러 모델과 동시에 대화하며 작업을 확장해 나갔다. 초기에는 자신의 회화 작품을 매개변수로 삼았으나, 이후에는 조류, 박테리아, 곰팡이, 조직과 세포, 식물과 동물, 기계 및 전자 제품, 지질학적 풍경 등 다양한 이미지를 결합하여 각 모델이 독자적으로 진화하도록 했다. 작가는 이 과정을 자신의 시각적 패턴과 모티프(‘시각적 DNA’)를 생물과 무생물 모두를 아우르는 생태적 존재와 혼합하는 방식으로 개념화했다.
이렇게 생성된 머신러닝 알고리즘들은 마치 물감의 레이어처럼 기능하며, 실제 사물을 참조하면서도 추상적인 형태와 색상, 패턴으로 독특한 하이브리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서로 상반된 요소들이 융합된 이 이미지들은 세포 분화처럼 작품의 표면에서 생명체의 형상으로 부풀어 오르거나 파열하는 듯한 시각적 효과를 자아낸다.
‘매쉬 페인팅(Mesh Paintings)’ 시리즈에서 사용된 매쉬 소재는 빛의 반사, 왜곡, 투명도, 레이어 등의 특성을 활용하여 시점에 따라 이미지가 다르게 보이는 홀로그램 같은 시각적 효과를 만들어낸다. 작가는 이러한 알고리즘 기반 회화 실험을 통해 화가의 저자성과 그 신화에 도전한다. 화가의 육체가 부재한 회화가 가능한가? 기계의 지능이 회화의 진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회화의 주관적이고 체현된 측면이 기계로 수행될 수 있는가? 주제 설정에서부터 물리적 구현, 제목 짓기, 작품 설치에 이르기까지 회화 제작의 전 과정을 기계가 어떻게 보완할 수 있는가? 나아가, 언젠가 인간은 회화를 단지 개인의 산물이 아닌, 재료, 신체, 미생물, 기계가 모두 창작과 생산에 관여하는 하나의 생태계로 이해할 수 있을까?
이우환 (한국, b. 1936)
Dialogue
Oil on canvas
162 x 130 cm
2020
이우환의 Dialogue 시리즈는 그의 예술적 특징을 잘 반영한 작품군으로, 여백과 상호작용을 통해 관람자와 작품 간의 깊은 소통을 유도한다. 작품은 여백과 공간의 활용을 통해 존재와 비존재의 경계를 드러내며, 넓은 여백 속에서 붓 자국이 강조된다. 단순함 속의 깊이를 표현하는 간결한 붓질과 점들은 반복적이지만, 각 선과 점에 축적된 에너지와 긴장감을 통해 깊은 철학적 의미를 전달한다.
또한, 자연과의 조화가 느껴지는 유기적인 붓질과 시간과 반복의 요소를 반영한 점진적인 축적 과정은 자연스럽게 시간의 흐름을 작품에 담아낸다. 이러한 점들을 통해 관람자는 시간과 존재에 대한 명상적 사유를 경험하게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관계와 상호작용의 개념으로, Dialogue 시리즈는 관람자와 작품 사이에 응시와 반응이 오가는 대화의 장을 형성한다. 이는 관람자가 작품과 함께 참여하고 교감하는 경험을 제공하며, 단순한 시각적 아름다움을 넘어 인간과 자연, 시간의 관계를 탐구하며, 관람자에게 명상적이고 사색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리차드 터틀 (미국, b. 1941)
Fluidity
WORK ON PAPER
screenprint printed on recto and verso with colored enamel and water-based inks on handmade paper in a white printed wooden frame; in a Foamcore box with cloth taping including wall-mounting hardware; issued with colophon on top and with packing foam attached to deckle
38.1 × 38.7 × 5.4 cm
Edition AP 6 of 11(Edition of 30 + 4 Printer’s Proofs, 11 Artist Proofs, 1 Bon À Tirer)
2008
리처드 터틀은 미국의 현대 미술가로,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을 넘나드는 독창적인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섬세하고 간결한 형태를 이용해 공간과 재료의 관계를 탐구하며, 전통적인 회화나 조각의 경계를 허무는 작품을 많이 제작했다. 터틀의 작품은 종종 캔버스, 천, 종이, 나무 등 일상적인 재료를 사용해 만들어지며, 그 속에서 재료 자체의 특성과 정교한 미학을 강조한다.
그의 예술은 일반적으로 크기나 규모 면에서 소박하고 간결하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적 울림과 철학적 깊이는 상당하다. 터틀은 시각적인 단순함과 재료의 불완전성을 통해 형태의 아름다움과 공간에서의 존재감을 탐구하며, 이를 통해 관람자와 감각적인 교감을 시도한다. 그의 작품은 대개 손수 제작된 느낌을 주며, 정밀한 설치와 배치를 통해 공간의 맥락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형태, 색, 선을 통해 보는 사람에게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작업하며, 관람자로 하여금 그들 스스로 작품과 의미를 만들어내는 과정에 참여하게 한다. 전통적인 미술의 규칙을 따르기보다는 미학의 경계를 실험하고 소박한 재료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발견하는 데 중점을 둔 작가로 소소하면서도 깊은 여운을 남기는 것이 특징이다.
알렉스 카츠 (미국, b. 1927)
Vivien x 5
Silkscreen
106.6 x 243.8 cm
edition of 14/60
2018
Vivien x 5는 알렉스 카츠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로, 그의 독특한 포트레이트 스타일과 미니멀한 미학을 잘 보여준다. 이 작품은 같은 인물인 비비엔(Vivien)을 다섯 번 반복하여 그린 작품으로, 각기 다른 순간의 표정을 담고 있다. 이 작품에서 알렉스 카츠는 반복적인 인물의 배열을 통해 시간의 흐름과 시선의 변화를 시각화한다. 작품은 마치 스냅사진을 연속해서 배열한 것처럼 평면적인 형태와 밝고 선명한 색감을 사용해 모델의 다양한 모습을 표현한다. 이러한 배열은 인물이 가진 여러 측면을 강조하며, 마치 관람자가 한 사람의 여러 모습들을 동시에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알렉스 카츠의 작품은 특징적으로 단순화된 형태와 명료한 색상으로 인물을 묘사하는데, 이는 그의 팝아트적 요소와도 연결된다. Vivien x 5도 그러한 스타일의 연장선으로, 불필요한 세부 묘사를 배제하고 순수한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관람자에게 인물의 생동감과 존재감을 전달하고자 한다. 또한, 카츠는 인물의 시선을 통해 관람자와의 교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이 작품 역시 모델의 시선을 여러 방향으로 배치하여 관람자와 심리적 상호작용을 유도한다.
김택상 (한국, b. 1958)
Breathing light-Red in red-23-1
water, acrylic on canvas
182.5 × 123.5 cm
2023
한국 포스트 단색화의 주요 작가로 주목받는 김택상의 작품은 그 자체로 독자적인 환경을 구축한다. 김택상의 숨빛(Breathing Light) 연작은 물의 반사적 요소와 그에 따른 빛의 특성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김택상의 반투명한 회화 작업은 회화의 전통적 요소인 형식, 묘사, 서사 대신 여러 계조(階調)의 색으로 평면을 가득 채운다. 작가는 그의 작업을 고도의 의도성과 일회적인 우연성에 기반한 물, 빛, 시간 등의 자연 요소로 축조한 공간적 구조로 인식한다. 즉, 김택상의 작업은 우연성과 의도성 간의 긴장을 모방 및 창조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아크릴 안료를 풀어 녹인 용액을 캔버스 천 위에 가득 붓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희석된 입자가 캔버스 표면 위로 가라앉기를 기다린다. 색을 흡수한 캔버스에 하나의 색층이 쌓이면 그는 남은 물을 빼내어 캔버스를 건조시킨다. 작가는 캔버스 표면이 ‘빛이 숨쉬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같은 과정을 수십 수백 번 반복한다. 그 과정에서 덧대어지는 여러 겹의 층위는 서로를 드러내는 동시에 희미해진다. 김택상은 작업에 관여하지만 캔버스 위에서 자연의 작용 과정이 이끄는 여러 가능성 또한 열어둔다. Breathing light-Red in red-23-1(2023)에서 붉은 색조의 밀도 높은 층들은 평면에 질감과 촉각성을 부여한다. 화면 가장자리의 미묘한 색의 변화는 안료를 머금은 물의 잔잔한 흐름을 연상시키고 작품에 생동하는 기운과 깊이감을 더한다.
켄건민 (한국, b. 1976)
2022-1988
Oil, Korean pigment, silk embroidery thread, beads, crystals
203.2 × 162.6 cm
2023
켄건민은 강렬하고 생동감 넘치는 회화로 비애와 환희, 그리움을 시적으로 풀어낸다. 서울에서 태어나 샌프란시스코, 취리히, 베를린, 로스앤젤레스에서 작업 활동을 이어온 작가는 이민자로서의 경험과 다문화적 관점을 자양분 삼아 수면 아래 간과되고 소외된 주제에 천착해 왔다. 그는 상대적으로 주목하지 않은 역사적 내러티브를 성경 및 고대 신화 이미지와 결합하고, 유화를 한국 전통 안료 및 자수와 섞어 교차 문화적 풍경을 화면 위에 직조한다. 이번 전시작에서 작가는 1980 년대 후반 경험한 개인의 유년기 경험을 다루면서도 이를 문화적으로 규정되지 않은 환상적 이미지로 풀어낸다.
2022-1988은 호랑이와 관련해 발생한 1988년과 2022년의 두 일화를 통해 개인과 사회적 관계에 대해 말한다. 1988년 무더운 여름 작가는 서울올림픽 개폐막식 행사를 위한 매스게임 훈련에 동원되었다. 개발도상국으로서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위해 힘을 보태야 한다는 어른들의 선전에 문제의식을 가질 틈도 없이 미성년자 교육권과 자유권을 박탈당했다. 서울올림픽의 마스코트 ‘호돌이’가 어린 작가에게는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이미지로 얼룩지게 되었다. 2022년의 일화는 로스앤젤레스 로스펠리스의 고급주택가를 떠돌아 다니던 P-22 의 죽음과 관련된다. 시민들은 산에서 내려와 도시의 전설이 야생 동물을 극진히 보살펴 주었고 이후 그의 죽음은 동물인권부터 도시계획 등의 담론을 낳았다. 로스앤젤레스에서의 일화로 어린시절의 불편한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된 작가는 호랑이의 배를 열고 보석과 자수를 이용해 자신 안에 있던 이야기를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줄리안 오피 (영국, b. 1958)
People. 33.
LED Wall Mounted (Square)
160 x 160 x 11.7 cm / 63" x 63" 4 5/16"
140 kg / 308 lbs
Unique
2018
줄리안 오피의 LED 작품은 단순화된 선과 형태로 '걷는 사람들'을 생생하게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LED를 활용해 밝고 선명한 빛으로 이미지를 구현함으로써, 실제 모델을 바탕으로 한 익명성을 지닌 인물의 동적인 움직임을 간결하게 전달한다. 오피는 각 인물의 특징을 최소화하여 도심 속 표지판이나 광고, 브랜드 로고처럼 직관적이고 상징적인 시각언어를 구축하며, LED라이트 박스나 대형 전광판을 통해 공공 공간에도 체험형 미술로 확장하고 있다. 이러한 LED 작품은 형태의 반복, 빛의 역동성을 통해 현대 환경에서 빠르게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포착한다는 점이 돋보인다.
김 크리스틴 선 (미국, b. 1980)
반복되는 메아리
종이에 목탄
132.5 x 132.5 cm
2022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으로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김 크리스틴 선은 드로잉, 퍼포먼스, 비디오, 대형 벽화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소리와 언어, 그리고 이들이 사회에서 작동하는 방식을 탐구해왔다. 청각장애인으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녀는 소리의 정치성, 구어와 미국 수화(ASL)의 사회적 역할, 신체와 유머의 전략적 활용 등 복합적인 커뮤니케이션의 과정을 시각적으로 풀어내며 국제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작가는 ‘메아리’라는 개념을 다층적 은유로 탐구한다. 그녀는 자신의 메시지가 통역사를 거쳐 미국 수어(ASL)에서 영어로 전달될 때 자연스럽게 지연과 왜곡이 발생함을 경험한다. 작품은 반복적으로 타인에게 자신과 가장 잘 소통할 수 있는 방식을 설명해야 하는 상황을 담고 있다. 소리가 표면에 부딪혀 반사되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동시에, 한 손이 다른 손바닥에서 튕겨 나가는 ASL의 ‘메아리’ 동작을 상징한다. 이처럼 그녀의 작업은 소리와 언어, 그리고 반복되는 소통의 과정을 시각적으로 풀어내며, 청각장애인으로서 겪는 커뮤니케이션의 복잡함과 그 안에 내재된 의미의 변형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손바닥 ('메아리 덫' 시리즈)
종이에 목탄
133 x 133 cm
2021
‘메아리(Echo)’ 드로잉 시리즈는 독일에 거주하는 미국인 청각장애인으로서 작가가 겪는 언어적 경험을 시각적으로 풀어낸다. 그녀는 “내 삶은 메아리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하며, 메시지가 독일어에서 영어, 그리고 미국 수어(ASL)로 옮겨가며 표면에 부딪혀 메아리치듯 지연되고 때로는 왜곡된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경험은 사회적 ‘*에코 챔버’(echo chamber)*라는 개념까지 확장된다. 청각장애인 커뮤니티는 비교적 작고 긴밀한 네트워크로, 아이디어와 정보가 이리저리 튕기며 반복되는 일종의 밀폐된 공간이 되기도 한다. 각 ‘메아리 덫’ 시리즈에서 작가는 목탄을 사용해 ‘메아리’라는 단어의 ASL 동작(한 손이 다른 손바닥을 치고 다시 반대 방향으로 튕겨 나가는 모습)을 그래픽적으로 표현한다. 그녀의 작업은 단순히 소리의 반복을 시각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보가 어떻게 전달되고 변형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통의 복잡성과 번역의 불완전성을 드러낸다.
*에코 챔버: 자신과 비슷한 생각과 의견만 반복적으로 듣게 되는 환경이나 상황을 의미
주장이 만들어지는 지점들
종이에 목탄
150 x 150 cm
2022
이 작품은 미국 수어(ASL) 통역사가 다수의 청중을 대상으로 통역할 때 겪는 경험을 다룬다. 통역사는 여러 연사들을 차례로 가리키며 그들의 말을 수어로 전달하지만, 농인 관객들은 통역된 발언과 실제 연사 사이의 연결고리를 명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작가는 메시지가 통역사(혹은 문자 앱, 종이 메모 등)를 통해 튕겨 나가는 현상을 소리가 표면에 부딪혀 반사되는 ‘메아리’에 비유하고, 이를 통해 메시지 전달 과정에서 발생하는 지연과 왜곡의 가능성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엘름그린 & 드라그셋
Boy With Drone (Black Bronze)
Bronze, patina
151 x 43.7 x 80.2 cm
59 1/2 x 17 1/4 x 31 5/8 in
Unique
북유럽 출신의 작가 듀오 엘름그린 & 드라그셋은 1995년부터 베를린을 거점으로 모든 프로젝트를 함께 해왔다. 이들은 사실적인 조각을 비롯해 퍼포먼스, 디자인, 건축, 연극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유머와 철학이 공존하는 작품을 발표해왔는데 두 작가의 공동작업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인지하는 공간과 구조물, 그리고 이에 주어진 기능이 결코 중립적이지 않고 오히려 다양한 의미와 위계질서가 파생되는 현장이라는 의식과 의심에서 비롯되었다. 또한 이러한 사회적 구조에 소속된 구성원인 현대인이 사회와 맺는 부드러운 저항 관계와 이로부터 발생하는 무력감을 작업의 내러티브에 담아내며 자신들이 대면한 세계 속에 고착화된 관념들에 대해 끊임없이 자문하고 또 고발한다.
엘름그린 & 드라그셋은 조각 작품에서 어린이 또는 청소년을 자주 등장시켜 향수, 연약함, 변화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들의 조각은 종종 다이빙대 가장자리에 서 있는 아이, 그림을 그리는 소년 등 일상적인 장면을 묘사한다. 그러나 이러한 장면을 고전적이거나 기념비적인 조각 재료로 표현함으로써, 이들은 어린 시절의 평범한 경험 또한 우리를 형성하는데 중요하며 역사적인 사건 못지않게 기념할 가치가 있다고 제안한다.
드론을 든 소년의 초기 버전은 오르세 미술관(Musée d'Orsay) 엘름그린 & 드라그셋(Elmgreen & Dragset)의 전시 L'Addition(2024)에서 처음 공개되었다. 한 팔을 앞으로 뻗은 이 소년의 자세는, 미술관 소장품이자 상설 조각 전시에 포함된 외젠 기욤(Eugène Guillaume)의 대리석 조각 아나크리온(1851)의 제스처를 모방한 것이다. 하지만 아나크레온이 새가 앉아 있는 컵을 손에 들고 있는 반면, 엘름그린 & 드라그셋의 작품 속 소년은 마치 세상 밖으로 날려보내려는 듯 드론을 들고 있다. 이 드론은 몸의 연장선이자 자아의 확장으로 기능한다.
서도호 (한국, b.1962)
Cause & Effect
Acrylic, aluminum disc, stainless steel frame, stainless steel cable, and monofilament
285 x 200cm
Edition 3 of 3 with 1AP
2007
서도호의 Cause&Effect 작품 시리즈는 인간의 정체성과 공간 간의 상호작용을 탐구하며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심도 있게 조명한다. 촘촘히 쌓인 인간 형상의 조각들을 통해 인간의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어떻게 연쇄적으로 이어지고, 그로 인한 결과가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보여준다. 설치된 수천 개의 인물상이 각각 별개의 존재이지만 동시에 함께 매달려 있는 이 구조는, 개인이 독립된 존재이기 이전에 “누군가와 연결된 존재” 임을 보여준다. 이로써 정체성은 고립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역사적 관계망 속에서 구성된다는 메시지를 갖는다. 특히 이 작품은 작가가 공간에 대해 느끼는 물리적, 정신적 영향을 어떻게 느끼는지 드러내며 관객에게 강렬한 시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그레고어 힐데브란트 (독일, b.1974)
Silver Ager
Cut laser discs, canvas, wood
170 x 130 x 4 cm
UNIQUE #37507
2016
그레고어 힐데브란트Gregor Hildebrandt는 카세트 테이프, 비닐 레코드, CD/DVD, 비디오 테이프 등 음향 및 영상 매체와 같은 소재들을 캔버스 및 설치로 표현한다. 그중 Silver Ager는 그가 자주 이용하는 매체의 전통을 잇되,컷 레이저 디스크와 캔버스/목재라는 재료를 조합하여 제작함으로써 하나의 회화 작품으로 분류된다. 그레고어 힐데란트의 작품은 “음향/시네마 매체의 시각화”로 설명되며, 이 같은 방식은 음악·영화·언더그라운드 문화와의 연계를 암시한다. 이는 단지 재료를 사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매체가 담고 있던 팝문화적 기억을 시각 오브제로 환기하려는 시도이다.
안소니 맥콜 (영국, b.1946)
Breath (III)
Charcoal on paper
Set of seven drawings, 35.6 x 28 cm each
2011
일곱 개의 풋프린트 드로잉으로 구성된 이 시퀀스는 안소니 맥콜의 ‘솔리드 라이트(Solid Light)’ 시리즈 중 하나인 수직 구조 설치작품 <Breath (III)>의 주요한 토대가 되는 작업이다.
맥콜에게 드로잉은 단순한 준비 과정을 넘어 창작의 핵심이다. 그의 솔리드 라이트 작품들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움직이는 형태를 다루며, 이를 구현하기 위해 섬세한 계획과 시뮬레이션이 요구된다. 드로잉은 선형의 빛 줄기가 공간 안에서 어떻게 기하학적 형태로 확장되고 변화하며 조형적 형태로 실현되는지를 구체화하는 도구이자, 작품의 최종 형태와 관객의 경험을 결정짓는 중요한 매개이다.
팽창하고 수축하는 빛의 움직임은 마치 호흡처럼 느껴진다. 이와 같은 자연스러운 리듬을 관찰하며, 맥콜은 ‘호흡’이라는 개념을 작업에 도입했고, 선, 파동, 원과 같은 단순하고 기하학적인 추상 형태들을 통해 신체적 감각을 일으키는 이미지의 가능성을 확장시켰다. 움직임만으로도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빛의 조각은 보는 이를 향해 끊임없이 호흡한다.